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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숭아’? ‘봉선화(鳳仙花)’?
저자:  위진록 조회: 1957 발행 일자: 01.14.2011 카테고리: Arts


(55) 클래식 초대석

내가 아직 L.A.의 ‘라디오 코리아’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극작가이며 시인인 장소현씨와 공동제작하는 ‘일요응접실’이 방송되던 때니까 약 10년 전의 일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사문제를 비롯해 사회, 문화, 예술, 특히 이민자들의 생활에 관해서 장소현씨와의 즉흥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의 핵심을 파헤치는 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청취자들의 환심을 모았던 것 같다.

방송시간과 사람들이 주일마다 교회로 향하는 운전길과 겹치기 때문에 자동차에서 듣는다는 사람이 많았고 방송을 담당하는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 떨어져 재미있었다며 이미 7-8년 전에 끝난 ‘일요응접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만날때가 있다. 워낙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순발력과 카리스마적인 위트를 지닌 장소현씨의 리드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철두철미 상업적인 방송이 판을 치는 이민사회에서는 그래도 색다른 수준급의 방송이었다고 조금은 자부하며 회상할 때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물론 동서양의 짤막짤막한 음악들을 곁들이곤 하였는데 한 번은 한국의 가곡 ‘봉선화’를 선곡하여 “그러면 다음에는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봉선화를 조수미의 노래로 들으시겠습니다.” 하고 소개하였다. 우리 가곡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청취자도 모두 좋아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음속으로는 “여러분, 한 번 들어보세요. 이 아침에 이 노래, 여러분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요.” 하는 간절한 바램을 담으면서 프로듀서양에게 큐를 주었다. “아, 봉선화다.” 이럴 때 남보다 다분히 다혈질적인 나는 음악이 나오기 전부터 흥분하는 버릇이 있다. 귀에 익은 청명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노래 속에 교차하는 민족적인 애환을 상징하는듯한 전주가 흐른 다음 조수미의 노래가 시작된다. 나도 호흡을 가다듬고 소리없이 조수미에 합세한다.

프로듀서양이 “선생님!” 하고 부른 것은 바로 이때였다. “선생님, 지금은 봉선화가 아니고 봉숭아거든요?” 한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봉숭아? 봉선화가 아니라 봉숭아? “한국에서는 봉숭아가 표준말이라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거든요.” 갑자기 얼빠진 사람처럼 뻥뻥해하는 나를 납득시키려는듯이 프로듀서양이 설명한다. 이 때 나는 노래를 듣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봉선화가 봉숭아로 바뀌었다는 말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무식이 드러났다는 부끄러움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봉선화는 어디까지나 봉선화지, 봉숭아일 수 없다는 본능에 가까운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프로듀서양은 조수미의 노래가 끝날 때, 봉숭아로 바로 잡아 주기를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끝 소개에서도 봉선화를 고집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봉선화다. 봉숭아는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되면서 처음 듣게 된 가곡, 봉선화의 선렬한 이미지와 뜨거운 감동이 빛을 상실하는 느낌이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고 있을 때는 물론 금지곡이었다. 노래의 가사는 해마다 여름이면 앞뜰이나 뒷곁에 수줍은듯이 피고지는 봉선화의 일생을 안타까워하며 새봄의 환생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아 은연 중에 당시의 암울하던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1947년 경에는 당시 아직 20대였던 소프라노 김천애씨의 18번이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태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제한된 지면을 아까운 줄도 모르고 3절 모두를 기억하는대로 적은 것은 우선 이 가사의 이 미지와 언어미학적으로, 언어감각적으로 봉숭아 혹은 봉선화의 어느쪽의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가를 독자들로하여금 판단토록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우리말 사전에서 봉선화(鳳仙花)를 찾아본다. 아무 설명도 없이 ‘봉숭아’라고만하였다. 다음에 봉숭아를 찾아 본다. ‘봉숭아과(鳳仙花科)의 일년생 풀’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한자는 분명히 봉선화과라고 읽어야한다. 鳳仙花科라고 표기하고 봉숭아과라고 읽는 것은 잘못이고 억지다. 내가 어렸을 때 80년 전, 누나들 틈에 끼어 봉숭아 꽃잎을 백반가루와 같이 다져서 손톱마다 얹어 놓고 봉숭아 잎으로 싸맨 다음, 실로 다시 잡아매고 밤중에 그것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잠을 청하고는 이튿날 아침 손톱에 빨간 물이 들어있으면 환성을 지르며 좋아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봉숭아라고들 하였다. 그러나 봉숭아는 본래의 명사인 봉선화가 변화한 말이다. 더욱이 홍난파의 가곡 ‘봉선화’는 노래의 제목이고 처음부터 어쩔 수 없는 고유명사다. 그 봉선화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봉숭아로 바뀌었을까.

모르긴 하지만 한국신문에서 한글전용, 한자폐지가 시작되던 당시가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는 일단 쓰지 않기로 한 한자가 오히려 그리워서인지 얼토당토않은 고사성어나 한자숙어를 남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할 때 한자명인 봉선화를 없애고 봉숭아로 바꾸자는 학자가 있었을 법도 하다. 한편 봉선화는 원래 일본에서 온 말이라고 기피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작곡가 홍난파는 친일파 명단에 오르내리는 사람이다. 실제로 요즘 젊은이들은 작곡가 홍난파를 아예 모른다. 그것은 김대중 정부 이래로 친일파 시비가 일면서 그의 노래가 방송 매체, 교육기관, 기타 행사 등에서 의도적으로 내몰렸던 탓이다. 기록에 의하면 경기도에서는 그의 노래 ‘고향의 봄’이 도가(道歌)같이 되어 모든 행사 끝에는 반드시 합창했었는데 김대중 정부시절 모 도지사가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나는 홍난파가 1936년 미나미 지로(南次郞)총독의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 총동원령 이후 흥사단,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르고 나서 강제에 의해 사상전향을 천명하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친일행위를 하였는지 모른다.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하더라도 음악가는 음악으로 평가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곡 ‘봉선화’나 ‘성불사의 밤’ 두 곡 만으로도 작곡가의 인격이나 품성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사람을 해치거나 사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이런 음악이 솟아날 수 없다.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간직된 ‘봉선화’를 ‘봉숭아’로 고치게 한 사람들이 만일 이른바 반민족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생각하며 노래제목을 바꾸었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한 때 ‘소련 공산당의 아들’ 이라고 불리우며 공산주의 협력자의 낙인이 찍히던 쇼스타코비치는 이제 완전히 명예회복을 이루었고 또 히틀러의 총애 속에 열렬한 나찌 당원이었던 카라얀이 그 것으로해서 규탄 받는 일이 없으며 그의 명예에 돌 전지는 사람이 없다.

홍난파 역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에 의해서 제 마음대로 바뀐 봉숭아도 봉선화로 돌아가야할 것이고, 친일파보다는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조수미가 ‘울밑에선 봉숭아’가 아니라 ‘울밑에선 봉선화’로 고쳐불러준다면 나의 명예도 회복될터인데 –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춘하추동방송  
2011-08-05
위선배님 안녕 하셨습니까? 이 글 잘 읽었습니다.

홍난파선생님의 노래를 봉선화라고 하는데는 이의가 없다고 봅니다. 위선배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봉숭아는 원래 우리말로 쓰던 꽃 이름이었지만 홍난파선생님이 그 노래에 봉선화 라는 이름을 붙히며 모두들 그 노래를 봉선화라고 하지 봉숭아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 꽃 이름은 봉숭아 일자라도 노래는 봉선화입니다. 위선배님 말씀이 저는 옳으시다고 생각하며 봉숭아 라고 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바로 잡아 주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1963년부터 1998년까지 KBS에 있었고 퇴직후 KBS 사우회 부회장, 감사등을 역임했으며(LA지회를 창설할 시) 지금은 방우회 이사로 있습니다.

아울러 다음에서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열고 방송에 관한 글을 쓰고 있고 제 이름은 이장춘입니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춘하추동방송"을 치면 제 글을 보실 수 있고 여기에는 위선배님에 관한 글도 여러편 올려 놓았습니다. 김천애씨의 봉선화에 설명을 붙여 올려놓은 글도 있습니다.

위선배님의 사진도 여러장 구해서 올려 놓았습니다. 더 많은 사진과 얘기를 올려 놓고 싶습니다. 지난번에도 오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못 뵈었습니다.

혹시 메일 있으시면 종종 메일 보내드리겠습니다. 제 메알은 jc21@kbs.co.kr 입니다. 저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제 블로그 프로필난에 있습니다.

구민님이나 송현식, 정영호, 김자규님등과는 친분이 있습니다. 늘 행운이 같이 하심을 기원합니다.


 춘하추동방송  
2011-08-05
위선배님 안녕 하셨습니까? 이 글 잘 읽었습니다.

홍난파선생님의 노래를 봉선화라고 하는데는 이의가 없다고 봅니다. 위선배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봉숭아는 원래 우리말로 쓰던 꽃 이름이었지만 홍난파선생님이 그 노래에 봉선화 라는 이름을 붙히며 모두들 그 노래를 봉선화라고 하지 봉숭아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 꽃 이름은 봉숭아 일자라도 노래는 봉선화입니다. 위선배님 말씀이 저는 옳으시다고 생각하며 봉숭아 라고 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바로 잡아 주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1963년부터 1998년까지 KBS에 있었고 퇴직후 KBS 사우회 부회장, 감사등을 역임했으며(LA지회를 창설할 시) 지금은 방우회 이사로 있습니다.

아울러 다음에서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열고 방송에 관한 글을 쓰고 있고 제 이름은 이장춘입니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춘하추동방송"을 치면 제 글을 보실 수 있고 여기에는 위선배님에 관한 글도 여러편 올려 놓았습니다. 김천애씨의 봉선화에 설명을 붙여 올려놓은 글도 있습니다.

위선배님의 사진도 여러장 구해서 올려 놓았습니다. 더 많은 사진과 얘기를 올려 놓고 싶습니다. 지난번에도 오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못 뵈었습니다.

혹시 메일 있으시면 종종 메일 보내드리겠습니다. 제 메알은 jc21@kbs.co.kr 입니다. 저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제 블로그 프로필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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