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한국 백령도 근해에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난 후부터 나는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콤퓨터를 켜고 그 사건 추이를 지켜 보았다. 그 동안 천안함 침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글도 많이 읽었다. 그 글들 중에는 감상적인 시인의 글도 있었고, 즉각적인 군사적 보복을 주장하는 탈북자의 글도 있었고, 한국 보수와 진보세력의 극과 극의 상이한 견해들도 있었다. 주위에서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마치 함선, 군사, 정치 전문가들 같은 다양한 목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진실이 공식적으로 밝혀 질 때까지 되도록 말을 아끼고 싶었다 심증이나 추측, 소문만으로 유죄나 무죄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법치국가의 기본원칙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아 온 한국 사회는 좀 다르다는 사실을 또한 나는 알고 있다.
기소중인 사건들의 유죄 무죄를 결정하는 것은 법원 판결이 아니라 심증과 추측, 소문에 기초한 큰 목소리들이었다. 그래서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 초기단계에 있었던 한 전직 대통령이 “ 차라리 자살하라” 는 한 보수논객의 치외법권적 언어폭력에 굴복해서 자살을 했었고,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을 일으킨다” 는 한 언론사 피디의 주장에 한 때 한국은 촛불과 분노로 불야성을 이룬 적이 있었다.
아무 것도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진 것이 없다. 책임을 진 사람도 아직까지 없었다.
유일하게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증거물인 돈과 쇠고기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며칠 전에 한국정부에서 천안함 침몰원인이 “북한의 어뢰공격” 이라고 몇 주간에 걸친 조사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너무 많이 있다.” 고 주장하는 이견의 목소리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일단 한국정부 조사단의 공식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고 싶다. 솔직히 역사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진실같은 것은 없었다. 늘 승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합리화 시킨 것이 인간들이 기술한 역사의 진실이었다. 한국 정부 조사단은 북한 소행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물로 “ 차거운 쇠조각에 흰 페인트로 쓰인 1번” 이라는 글씨를 제시했다.
누가 그 깊은 바다 속에서 발견한 쇠조각에 “1번”이라는 글씨를 썼는 지, 왜 남기고 갔는 지는 아직 아무도 정획히는 모른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증거인 “쇠조각” 과 “1번” 이라는 글씨는 역시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는 대학시절 학업을 중단하고 그 당시 평범한 서민들의 자녀들처럼 3년간 국방의 의무를 필한 사람이다. 돈 있고 빽 있는 자녀들처럼 군면제나 방위역으로 빠져 나갈 특별한 재주나 배경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3년간 군가를 목청껏 부르면서도 한 번도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불타는 애국심같은 것을 느끼질 못했다. 그러나 내 목숨과 부모 형제들의 목숨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결심은 했었다. 나는 28년 전에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스스로 미국시민권을 택한 사람이다. 그리고 미국에 살았던 35년 동안 매년 미국정부에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했고 아들을 기르면서 온갖 미국정부의 혜택과 특권을 누려 온 사람이다.
미국은 머리 속, 그리고 법적인 내 나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의 심장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지난 한달 반 동안 나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하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를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잠을 설쳤다.
떠나온 조국에 대한 남다른 애국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에 두고 온 내 가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친구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전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어려서 잃었다. 그리고 월남전에서 존경하고 사랑했던 한 아저씨를 잃은 사람이다. 그래서 천안함 침몰로 목숨을 잃은 46명의 수병가족들이 느끼고 있는 슬픔과 비통함을 같이 느끼고 있다.
죽은 본인이나 가족들에게는 조국이나 이념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진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어떤 놈이건 간에 전쟁에 죽고난 뒤에 조국을 위해 죽었노라고 하는 놈은 필요 없다. 적을 죽이고 그놈들에게 조국을 위해 죽었노라 말하게 해라” 라고 했던 미국 2차대전 전투군단의 영웅 패튼 장군의 독설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북한의 수병들도 우주보다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라고 믿기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한반도에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는 불안한 소식이 들려 온다. 그래서 나도 우주보다 귀한 한 생명의 주인공으로 몇 마디 말하고 싶다. . 첫째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중한 인명을 앗아 갈 전쟁의 비극은 한반도에서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생명은 스쳐가는 이념이나 한 정권의 정치적 이해득실보다 소중하다. 손자는 가장 최상의 전술은 不戰而勝, 즉 싸우지 않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한자의 武는 창을 뜻하는 戈와 그칠 止가 만나서 칼을 쓰지 않고 안위를 지키는 것이 참 武의 의미라고 말해 주고 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 를 주장하는 호전주의자들도 많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외치고 싶다.
“뒤에서 말로만 애국을 주장하지 말고 자신과 자신 가족들이 전선에 앞장서서 자기들 목슴보다 조국이나 이념이 소중하다” 는 것을 죽음으로 보여달라고! 둘째로, 정부는 공자가 정치의 가장 근본으로 지적했던 信, 즉 국민들의 믿음을 회복하라. 정부 공식 발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정부가 주장하는 일부 좌파 국민들의 정서 뿐이겠는가 ? 입으로는 국민통합을 주장하면서 이 난국의 원인을 국민다수가 민주적 절차로 선택했던 지난 10년간 민주정부 탓으로 돌리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정권안보를 위한 정치적 이유로 “스스로 소중한 민주주의와 정부에 대한 불신” 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셋째로, 악기는 어느 상황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야 아름답고 존재의미가 있는 법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 정치는 정치의 목소리를, 군은 군의 목소리를, 경제는 경제의 목소리를 그리고 종교는 종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특히 이 새대에 평화와 사랑, 자비를 주장 하는 종교인들의 제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 한다. 예수의 사랑, 석가의 자비에 언제 보수나 진보의 편가름의 역사가 있었는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버지지아 숲 속에서 海岩 박평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