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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수(等數)에 목을 매는 나라
발행인:  임석구 조회: 2748 발행 일자: 07.11.2008 카테고리: Politics



전세계에서 유일무이(有一無二)하게, 어떤 공식석상만 되었다 하면, 반드시 “세계 11위 경제대국” 운운(云云)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이지 않는가 싶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또한 모른다.

유독(惟獨) 한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 어떤 나라도 정상회담을 비롯한 공식석상이 있을 때마다 이런 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 때 참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 한국 사람들은 11등이라는 등수를 반드시 들이밀어야 할까?하며 어리둥절해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이만큼 잘났다고 제자랑하는 것인데, 이것처럼 듣는 사람한테 어색한 것 없고, 한국보다 경제력이 큰 나라 입장에선 철없어 보일 수도 있고, 작은 나라 입장에선 졸부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졸부라는 비아냥거리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돈으로 될 수 없는 것을 돈으로 해볼려는 모양새가 우스워서 그러는 것 아닌가? 격에 맞는 행동거지가 있으면 자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지, 경제 11위를 들이민다고 해서 내 바램처럼 누가 나를 11등으로 쳐준단 말인가? 사실 11등으로 쳐준다면, 오히려 기분 언짢게 생각될 부분이 더 많을 텐데..**

우리가 정녕(丁寧) 관심을 두어야할 부분은 국제사회에 비쳐지는 우리의 위상이다. 그런데 위상이라는 것은 남이 평가하는 우리의 이미지인 바, 내 입으로 등수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고 제고(提高) 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본 우리의 역할과 활동이 합당한가에 따라 결정되는 위치인 것이다. 가슴 아픈 현실은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를 보면, 한 중간정도다. 한국의 영향력에 대한 등급도 또한 중간 정도다. 중국과 일본은 넘겨보지도 못하고 동 티모르에도 떨어지고 파푸아 뉴기니아에도 떨어진단다.* 세계경제 11위와는 하등(何等)의 관계도 없는 수준이다. 어쩌면 경제규모 대비 호감도가 가장 많이 떨어지는 국가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남들이 봐주기를 원하는 우리의 바램(wishful thinking)과 실제 남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등수에 목을 매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우리를 눈멀게 하고, 귀멀게 한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부터 모든 것을 등수로 평가하는 사회구조에서 교육을 받다보니, 평생동안 등수의 멍에를 지고 산다. 점수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런데 1등과 2 등과 60등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단 한번이라도 학교 일등이 사회에서도 일등한 적이 있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지 모르나, 첫째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고, 사람의 능력과 인품을 숫자로 매겨, 등수로 평가할 수가 있다는 것도 가당(可當)치 않을 뿐더러 평가기준 자체도 시(時)와 장소에 따라 인위적인 고무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생을 보장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일등, 일등 하면서 평생의 목을 매니 이런 측은한 모양이 어디에 있는지..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유년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사물과 사람의 판단의 근거로 첫 눈금부터 틀린 잣대를 들이대는 심각한 우(愚)를 범하고, 사람을 그 자체로서가 아닌, 돈은 얼마나 벌고, 학벌은 어떻고 하며 등수매기고 편갈라 서로 손가락질 하는데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아적 이기 뭉치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이로 인한 열등의식도 문제지만, 평생에 걸쳐 턱없는 일류병에 걸려, 학교 일등이었으니 사회에서도 반드시 일등을 해야만 되는 불편한 자존심에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편하지 않고, 남을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의 넉넉함이 없으니 그저 나보다 잘된놈은 반드시 끌어내려야 속이 시원하고, 잘하는 사람 칭찬하면 병이 나고,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참는다는 참 우스운 집단 불치병을 앓게된다. 거기에다 미국식 기회주의 혹까지 덧붙여 설상가상의 변종(變種)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 희극(?)을 모른다. 그러니 세계가 모인 자리에 가서 엄숙한 표정으로 등수, 등수를 연호(連呼)하는 것이다.

90년대 초,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우연히 켠 캐나다 TV 채널에 한국 국회의사당 회의실 단상에서 국회의원들끼리 마이크가 무슨 전리품이나 되는 듯이 이를 빼았으려 아우성를 치며, 멱살잡이 드잡이를 하더니만, 한 선수(?)가 다른 선수를 허리꺾기로 무력화 시킨 후, 쓰러진 사람 들쳐메고 나가는 모습을 방영하는 장면에 뉴스 앵커는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만 짓고는 다음 커트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저것이 국제사회에 비치는 한국이구나 하며 자괴심(自愧心)과 분노에 눈이 흐려지던 것이 생각난다. 당시 한.캐나다 특별한 동반자적 관계가 어쩌고 저쩌고 한창 떠들던 때였는데, 캐나다 방문 한국 대통령은 조금도 어김없이 “한국은 세계 경제 몇 위다”를 운운하며 정상회담의 기조연설을 시작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차라리 세계 몇위다하는 얘기나 안했으면 덜이나 민망했었을 텐데. 15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숫자로 환산이 가능한 등수가 그토록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숫자 환산이 불가능한 품성, 양식, 예절, 신의와 덕망 등이 오히려 더 절실한 것인지? 우리는 이론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언행 일치는 근처에도 못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왜 등수에 목을 매어 옹졸한 심성을 양산(量産)해대는지? 깊은 국가적 자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점수와 등수에 목매는 교육 시스템으로는 너그러운 심성과 혼을 가진 지도자 양성은 백년하청(白年河淸)이다.

교육은 백년대계(白年大計)다. 올바른 교육은 오랜시간에 걸쳐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반면, 잘못된 교육 또한 그 폐해를 교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교육정책의 잘못으로 인한 폐해를 우리는 누누(屢屢)이 보아 왔다. 일제가 고맙게도(?) 우리민족을 대신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해 기술해준 역사교육을 받고는 아직까지도 잘못되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세대들, 몇년간 한자를 폐지한 교육정책 때문에 우리말의 반쪽이상을 못알아듣는 절름발이 세대들, 상대평가에 의한 내신제와 졸업정원제 도입으로 성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정의 의미는 멀어지고 급우끼리 서로를 감시하는 인성을 갖게된 어른아이 세대들, 전교조다 뭐다 해서 2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날뛰어도 마치 일과성 행사인양 팔장끼고 영합하는 국가 기강.. 이로 인해 앞으로 등장(?)하게될 우리 2세대들.. 여기에 덧붙여 목불인견(目不人見)의 등수(等數) 병(病), 점수(點數) 병(病).

잘못된 교육정책의 피해 당사자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독도가 자기땅이라고 가르치는 일본의 속셈은 잘못된 것이라도 계속가르치다 보면, 언젠가는 전 국민이 총체적으로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일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땅이라 계속 우기다 보면, 그 생각이 굳혀질 것이고, 이를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파렴치한 역사왜곡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등수 병을 가지고 어깨를 겨룬다.

등수와 인간의 가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등수와 돈의 상관관계도 별로다. 등수와 국가 이미지도 별개의 문제다. 삶의 우선순위는 등수가 아니고, 어떠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사느냐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를 앞세우기 전에 남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배려하는 인간미가 그립다. 입은 제발 닥치고, 행동하는 양식이 그립다. 염치와 배려와 겸손이 그립다. 예의와 존경에 목을 매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우리나라 좋은나라. 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호주 시드니의 국제정책 로위연구소 **2006년 기준, 한국의 경제규모 13위로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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