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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커 장군을 기억하자
저자:  윤학재 조회: 106 발행 일자: 06.11.2010 카테고리: Culture



6.25 한국전쟁 때 초대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 장군(General Walker)은 세계 1차 2차 대전에서 팻턴 장군과 함께 명성을 남긴 용맹한 장군이다. 1950년 한국전에 참전하여 급하게 후퇴하는 한국의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을 사수 하라는 워커라인을 명령하고 풍전등화의 한국을 지켜낸 장군이다.

워커 장군의 낙동강 사수로 미군이 부산에 상륙 할 수 있었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23일 경기도 의정부 축성령 고갯길에서 한국군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로 현장에서 전사한 비운의 장군으로 한국전사에 기록되고 있다. 워커 장군은 미 24사단에 부대표창을 주기 위해 방문 하던 중에 빙판 고갯길에서 뒤따라오던 한국군 추럭과 충돌 장군의 찝 차가 추락하면서 운전병과 함께 전사했다.

맥아더 장군은 24사단에 참전한 워커 장군의 외아들 샘 워커 대위를 불러 아버지 유해를 워싱턴 알링톤 국군묘지에 안장하도록 명령하고 샘 대위가 떠난 후 그를 본국근무로 명령했다. 중공군 개입으로 전선이 위험한 한국에서 부자가 전사하는 비극을 막기 위한 맥아더의 배려였다.

한국전에는 미군 장성들의 아들 150여명이 참전했고 그들 중 34명이 전사 또는 부상했다. 미 군사고문관 짐 하우스 맨은 회고록에서 고풍 어린 미국 하버드학교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20여명의 학생들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한국 학도병 전사자의 이름이 한국 학교 동판에도 새겨져 있을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워커 장군의 전사 소식을 듣고 크게 흥분하여 한국군 운전병을 총살 시키라고 지시 했지만, 미 군사고문관의 만류로 운전병은 총살을 면하고 징역을 살았다.

서울 성동구 광장동 한강이 굽어 보이는 언덕에 미군들의 휴양지가 만들어지고 그곳에 건립된 호텔을 워커 장군의 이름을 부쳐 “워커 힐” 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워커 장군의 비운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워커 장군의 고마움도 잘 모른다. 낙동강 사수로 한국을 구해낸 워커장군의 기념물이 없기 때문이다.

소식에 의하면 한국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워커 장군의 동상을 미 8군사령부 공원부지에 건립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워커 장군 전사 58주기를 맞이하고 6.25 60주년을 맞아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워커 장군의 동상은 장군의 전사 58주기인 2010년 12월 23일 제막을 목표로 건립 중에 있으며 크기는 인천에 맥아더장군 동상과 비슷한 크기로 건립 된다고 한다. 이제 늦게나마 한국전에 은인인 비운의 워커 장군 동상이 건립 되는 것을 기쁘네 생각한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워커 장군의 외아들 샘 워커는 월남전에도 참전했고 예비역 대장으로 전역했다. 미국 군인 부자가 예비역 육군대장으로 전역한 것은 미군역사에 처음으로 기록된다 고한다.

우리 한국 민족은 6.25의 비극을 잊고 싶지만, 기억 할 것은 기억 해야 한다. 6.25는 기념하는 날이 아니고 상기(想起)하는 날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다시 그런 과거를 되풀이 하는 역사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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