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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장면의 추억, 인종차별
저자:  장소현 조회: 109 발행 일자: 06.11.2010 카테고리: Culture



가난한 시절을 살아온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짜장면에 얽힌 추억을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고소한 기름냄새, 춘장의 독특한 향기, 수타국수의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 어린 시절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었던 짜장면의 그 잊을 수 없는 맛…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고,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우리말 맞춤법으로는 자장면이 맞는다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짜장면이라고 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아서 저는 짜장면을 고집합니다. 그렇게 헤아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로, 보도용어를 자장면으로 통일한 것은 1994년부터랍니다.)

그 짜장면이 한국에 들어온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답니다. 지난 1905년 인천에 형성된 차이나타운에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음식점인 <공화춘(共和春)>이 문을 열고, 고기, 양파 등을 넣고 볶은 한국식 짜장면을 팔아 인기를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는 겁니다. 이를 기념하는 <짜장면 100주년 축제>가 사흘간 인천의 중국인 마을에서 열렸다고 하는군요. 축제 기간 동안에는 짜장면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입에 군침이 돌아, 아내와 둘이서 짜장면을 먹으러 동네 중국식당으로 갔습니다. 맛이 썩 좋았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추억도 함께 즐기는 셈이었으니까요…

중국에서 건너온 짜장면은 우리 한국 서민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 중의 하나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요사이는 라면이나 서양에서 들어 온 패스트푸드 등에 밀려 예전만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도 줄기차게 먹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짜장면이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아십니까? 하루 평균 700만 그릇의 짜장면이 팔린다고 합니다. 한 그릇을 3,000원으로 치면 하루에 210억원 어치가 팔리는 셈이지요. 참 굉장합니다.

얼마 전, 한국 정부가 북한에 전기를 대주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 뜻은 좋지만 막대한 송전(送電)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걱정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국민 한 사람이 짜장면 한 그릇 값을 한 달만 아끼면 1조5000억원이 걷힌다”며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만 짜장면을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인사들 가운데도 짜장면을 즐겨 먹는 이들이 많답니다. 예를 들어, 줄기세포 소동으로 유명한 황우석(黃禹錫) 전 서울대 석좌교수는 매년 200일 정도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한다네요. 시간이 아까워서 단 5분만에 후루룩 먹어 치운다는군요.

“맛도 좋고, 시간도 벌고 얼마나 좋습니까. 고마운 음식입니다.” 황교수의 짜장면 예찬입니다.

아무튼 불과 100년 사이에 이처럼 ‘대표적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은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짜장면에는 화교들의 애환이 배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얀 그릇에 담긴 짜장면은 화교들의 검은 한숨인지도 모릅니다.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슬픈 화교의 눈길이 생각난다. 대학생 시절, 함께 짜장면에 소주를 마시던 후배로부터 ‘지독한 노랭이 짱꾸이 놈아’ 란 말을 들었던 그 화교 주인의 눈길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명사의 말씀입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우리도 별 생각 없이 그런 말을 내뱉곤 했으니까요.

“한국에서 사는 화교들이 할 수 있는 게 딱 세 가지 있어요. 지금 삼십대쯤 된 화교들은 크면서 항상 같은 얘길 듣고 자랐어요. 너희들이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짜장면을 만들거나, 한의사가 되거나 가이드가 돼야 한다고요. 가이드 같은 경우는 최근 중국과의 여행도 자유로워지고 사례비가 늘면서 생겨난 말이지만, 전에는 대부분 중국집 주방장이 되거나 조금 똑똑한 애들은 한의사가 되는 거죠.”

인천에서 중국집을 경영하는 한 화교의 말입니다. 혹독한 현실을 견뎌낸 부모세대들이 3,4세대의 화교들에게 주는 일종의 생존지침이랍니다.

그 이들이 받아온 차별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아픕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나, 한국을 당연한 고향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데도 외국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서러움, 정책적인 갖가지 차별과 억압정책 등등…

하긴 뭐 요사이 외국인 노동자 대접도 영 말씀이 아니라지요? 좁디좁은 나라에서 지역감정이라는 고질병이 극성을 부리는 판이니, 외국인 푸대접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짜장면을 생각하면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르곤 합니다. 짜장면과 인종차별이라니 좀 쌩뚱맞기는 하지만, 미국에 살면서부터 그렇게 됐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는 화교 한 분으로부터 한국에 사는 화교들이 한국 국민들과 정부로부터 받아온 부당한 대우, 애환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부끄러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가슴 저린 사연들이 어찌나 많은지… 미국에 오니 그런 괄세 받지 않아 너무 마음 편하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한국사람들처럼 인종차별을 심하게 하는 민족은 없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걸핏하면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받는다고 투덜거립니다.

퇴놈, 짱꼴라, 짱깨, 왜놈, 쪽발이, 멕짱, 깜둥이, 연탄, 흰둥이, 양놈, 코쟁이, 양키… 외국인들에게는 당연한 듯 ‘놈’자를 붙여 부릅니다. 이런 낮춤말들을 별 부끄러움 없이 듣고 쓰면서 자라온 우리 마음 밑바닥에 앙금처럼 깔려 있는 차별의식과 편견… 이런 것들은 필경 근거 없는 민족적 우월감,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 등에서 나온 것들이겠지요. 우리가 스스로를 엽전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확실히 다른 마음입니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 살면서는 이런 잘못된 생각의 앙금들이 독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치명적입니다.

더욱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런 편견의 한 켠에 백인들에 대한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으로는 형편없이 깔보고 업신여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운 눈길로 올려다보며 주눅 들어 하는 마음…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락가락하느라,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느라, 툭하면 인종차별이라고 짜증내느라, 우리는 참 바쁩니다. 신경통이 날 지경입니다. 그래서 바바나 인간은 늘 슬픕니다.

이런 복잡한 마음에서 벗어나 정겹게 더불어 사는 지혜를 길러 실천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튼튼해져야 할 텐데… 그것이 영 쉽지가 않습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얘기가 좀 복잡하고 우울해졌네요.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오늘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어떠십니까? 화교들의 검은 한숨과 하얀 희망으로 100년 세월을 이겨온 짜장면 한 그릇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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