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몰래 국토가 잘려졌고, 잔인한 냉전은 끝내 동족상잔을 3년이나 치루게 했다. 53년 7월, 고위급 남북정치협상이 휴전 조인후 3개월 이내로 연다는 전제로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한반도 주둔 모든 외국군 철수라는 조항이 정치협상의 가장 중요한 잇슈였다. 한미방위조약이라는 명분 하에 주한미군은 ‘한미연합사’라는 모자를 갈아쓰고 외국군 철수조항을 비켜나갔고, 끝내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은 유명 무실해지고 말았다. 잔인한 냉전은 <분단>을 더욱 고착시켰고, 어언 6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다. 세계역사에서 가장 긴 <휴전>을 어깨에 을러매고,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딱지를 얼굴에 붙이고도 남들이 조소하고 멸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으며 외면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절머리가 나도록 혹독한 동족상잔을 치룬 우리는 누구 보다도 평화를 사랑해야 하고 평화를 쟁취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도60여년이 흐르도록 한반도의 전쟁 잠정중단인 <휴전>을 <평화>로 전환하기를 서울 정부는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숱한 문제들, 특히 남북적대관계와 북핵문제도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 부재가 근본적 원인이라 해도 무리한 말이 아닐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동안 [평화협정체결]이라는 말 자체도 금기사항이었고, 아무도 감히 그 말을 끄집어낼 수 조차 없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평화협정>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2007년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느닷없이 부시는 노 대통령에게 한국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참여케 해서 협정에 서명토록 하겠다고 했다.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도 아니고, 더구나 ‘작통권’ 마저도 미국에 넘겨준지가 60년째의 한국, 바로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자 자화상이다. 법적으로야 협정 서명 당사자라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전쟁 당사자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에 관한한 한국이 배제돼서는 안될 뿐 아니라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와는 정 반대로 한국은 평화체제 논의를 훼방하는데에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작은 문제가 아니다. 서울 정부가 들고 나온 가장 큰 반대 이유로 “핵을 가진 북한과의 평화협정 서명이 무슨 효과가 있냐”라는 것이다. 얼핏보기엔 일리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았던 지난 53년간 왜 평화체제 논의를 안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고, 핵보유국과의 평화체제가 불가능하다는 논리야 말로 북한에만 적용시킨 것으로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북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제정치외교나, 특히 남북관계에서는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다. 클링턴 행정부의 <북미기본합의서>나 <북미공동 커뮤니케>가 부시에 의해 깨졌는가 하면, <6.15와 10.4선언>도 현 한나라당 정부에 의해 쓰레기통에 던져진 것은 세상이 다아는 일이다. 이것은 신뢰를 결정적으로 실추시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북쪽은 한,미 정권교체로 결국 발목만 쥐고 나자빠진 꼴이 됐으며 <신뢰>를 가지고 시비를 해야할 당사는 바로 북한일 것이다. 그런데 국가 정상들 간에 서명된 국제적 문서를 걷어찬 사람들이 도리어 신뢰 운운하는 것은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 정부가 ‘한반도평화체제’ 이야기만 나오면 알레르기가 발작한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평화체제에서는 ‘주한미군’의 존재가치가 없어지고 자연 주한미군 철수가 불가피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의 버팀목이 바로 주한미군이라는 철학을 신주단지 같이 믿기에 주한미군 철수는 곧 그들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편, 북한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제안을 해온지가 오래지만, 특히 작년과 금년에는 전례없이 강한 요구를 하고 나섰다. 작년 3월에는 사상 유례없는 규모와 핵무기 까지 동원된 ‘키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 취소 요구가 거부되자 지체없이 ‘은하위성’과 핵실험 까지 실시하며 강력한 물리적 조치로 대응했다. 지금 실시 중에 있는 ‘키리졸브’를 의식한 북한은 지난달 서해에 포사격지역을 선포하고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나섰다. 주한 및 해외 미군 2만 여명이 참가하는 이번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작년에 비해 축소되기는 했지만, 훈련이 시작되는 날 (3/8-18)북한의 최고사령부는 인민군 전 장병에게 “전투동원태세를 갖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실, 이름만 바꿔가며 장장 35년간이나 계속되는 한미합동훈련은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의 <안보>를 위해 <핵>이라는 수단에 의지하도록 만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외무성 대변인은 ‘키리졸브’ 훈련과 때를 같이해 “조선반도에서 평화협정 없이 군사적 대결이 해소될 수 없고 군사적 대결의 해소가 없이는 비핵화도 실현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서 북의 대변인은 “우리의 평화협정 제안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북쪽이 집요하고 끈질기게 ‘평화협정’에 목매는 이유를 들여다 보면, 우선 남북 적대관계나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한반도의 평화부재에서 출발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휴전 서명 당사자인 미국은 남쪽을 대표하는 법적, 실질적 책임자이기에 2007년 노 대통령 방북도 미군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분계선을 넘었던 것이다.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때 마다 미국은 남한을 배제한 협의는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되풀이 했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는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고, 냉전시나 후를 통해 중,러 견제를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남쪽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진짜 관심은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말일 것이다. 그러나 각성된 한국민의 여론, 북한의 또다른 물리적 실력행사 위협, 그리고 G2로 올라간 중국의 입김을 외면할 수 없어 떠밀려 ‘한반도평화체제’ 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될 막다른 골목에 미국이 다달았다고 보인다. 겉으로 보이기는 의제의 순서배열 시비가 문제인듯 비쳐지지만, 실지로는 서울 정부의 평화체제 논의 차단 자세가 ‘6자회담’ 지연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보인다. 불가피하다곤 하지만, 미국의 예속적 속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한국은 미국의 뒤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이 작년 여름을 기해 적극적 화해외교를 펼치면서 남북화해와 정상회담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인지는 알길이 없으나 이번 ‘키리졸브’ 기간에 과거와는 달리 통신과 통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좋은 징조임이 분명해 보인다. ‘6자회담’ 의장국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G2의 위치에 올라간 중국이 미국의 뒷바라지만 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한,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미국이 달가와하지 않는2차 북미 양자회담을 중국측이 적극 주선하는 동시에 ‘평화회담’도 매우 비중있게 취급하고 있다. 작년 가을 원 총리의 방북으로 중국의 대규모 원조와 경제협력은 대북제재국제공조 와해를 가져왔다고들 평가했는데, 이번에는 북한의 ‘대풍국제투자구룹’이 새로 설립된 북한의 ‘국가개발은행’을 통해 1백억 달라 투자를 이끌어 냈다고 알려졌다. 박철수 대풍국제구룹 총재는 “그 무슨 제재에도 얽매이지 않는 <합법적 활동>”이라 말하면서 “조선반도에 가로놓인 정치적 문제들도 풀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된다”고 했다. 북한 제재에 인생을 걸고 있는 서울 정부에겐 너무도 큰 실망이긴 하지만, 아무튼 중,미의 묵계 내지는 의견조율 없이 대규모 대북투자가 가능하다고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상, 이념, 정치제도를 초월한 ‘실리외교’를 앞세우고 있는 중국이 경제적 이유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안보적 차원에서 대한반도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국은 쿠바 미사일 사태와 동구 MD사태를 잘 기억할 것이고 이것을 자신의 <국가안보>에도 적용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다. 그래서 중국이 이 문제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우리고 있고, 미국도 중국의 관심사를 외면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은 자신의 앞마당에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주한미군이 버티고 있고, 시도때도 없이 벌어지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 본다면 너무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물론 날로 악화 일로에 있는 남북대결이 화약냄새를 풍길 수도 있어 중국의 안보 우려사항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북한의 자주성이나 독립성을 경험으로 터득해 잘 이해하고 있는 중국은 북미 전략적 동맹관계가 멀지 않은 장래에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이를 사전 차단하려는 차원에서 북중관계를 복원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아무튼 이런 북미 전략적 협력에 대한 발언이 리근 국장이나 김계관 부상에 의해서도 언급된 바도 있기는 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보즈워즈 북핵특별대표가 들고간 오바마의 친서 속에도 들어있다. 그리고 ‘9.19공동성명’이나 ‘북미공동커뮤니케’에도 포함돼 있다. 어떤 형태로던 이것이 논의가 된다는 것은 분명하나 의제순서를 가지고 입씨름을 하는 모양이다. 남북관계 복원은 물론이고 평화체제 논의가 건설적 방향으로 진입만 해도 6자회담에 생산적 기여를 할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한반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 세계평화에도 크게 이바지 한다는 것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우리 민족이 반드시 그리고 그여코 이뤄야할 숙명적 과제다. 그래서 이미 07년 ’10.4선언’에서도 남북이 합의한 대목이다. ‘휴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중국이 한반도 평화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을 우려하기 보다는 기대를 해볼만 하다. 중국의 적극적 개입과 중재는 회담에서 어느 일방의 독주를 차단하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합리적 방법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생산적 기여를 햐야만 한다. 미국은 평화체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보며, 그것이 북핵폐기에도 결정적 도움이 된다고 보는 듯 하다. 최근 발표된 미국 ‘QDR보고서’를 보면, 12년 ‘전작권 이양’을 염두에 둔 <주한미군 및 한국군 전략적 유연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주한미군은 물론이고 한국군도 해외 분쟁지역에 언제든지 파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 정부가 <전략적 동맹> 혹은 <한미혈맹>을 염불처럼 외우면서 미군과 같이 해외전투 참여를 애걸복걸한 덕분에 미국이 취한 조치라 미국을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발언이 심심치 않게 북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작년 10월 ‘동북아협력대화’에 참석했던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주한미군의 임무가 동북아 안보를 위한 역할로 전환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주한 미군주둔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에서는 여러번 이런 말을 흘렸었고, 특히 김일성-카터 회담에서도 되풀이 됐던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꽃노래처럼 불러대던 북한의 방향선회에 대해 평화체제에 대한 절박함과 동시에 북한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평가들을 한다. 적어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만은 남쪽이 주도권을 쥐고 풀어나가야 한다. 더구나 협정에 서명한 당사자도 아닌 신분으로 이를 반대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지만, 설령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들인 북,중,미가 남쪽을 배제한체 요리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욱 우리를 불안케 하는 것은 서울 정부가 ‘한반도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에, ‘한반도 통일’이 아니라 ‘북한 괴멸’에 맞춰놓은 초점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가지만 예로 들면, 연례행사고 방어훈련이라 변명은 하지만, 바로 <작계 5027, 5029>를 실제로 적용한 ‘키리졸브’ 한미합동북침훈련이다. 이 작전은 한미합동군이 북쪽으로 진격해 북한을 점령 한다는 실전훈련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한 전쟁놀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 부재에서 출발된 불장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녕 우리는 <휴전사수>로 민족공멸로 치닫는 전쟁에 휘말릴 것인가, 아니면 민족의 행복을 담보하는<평화체제>를 택할 것인가? 답은 이미 선명하게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