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Previous weeks

Politics/Economics
Literature
Culture/Society
Arts
Education/History
Health
Life
Reader's Opinion
Korea Now
Religion
Photo Gallery
Issue Forum

Staff
Writers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北韓山- 정신․문화분야의 민주주의 발전 -- 교육의 개선문제 --
저자:  노태구 조회: 106 발행 일자: 05.28.2010 카테고리: Politics



1. 교육: 사람을 생산하는 공장

정신생활에서 중요한 문제는 첫째로 교육이다. 교육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교육은 사람을 생산하는 사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라면 교육은 사람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사람을 생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물학적 존재로서 어머니가 아이를 낳아가지고 이를 키우는 과정은 생산과정이다.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개조해가는 과정이다. 사회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육체를 갖지만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정신이 사회적 특징이다. 정신을 가져야 사회적 인간이 된다.

2. 정신의 3측면

그러면 정신의 중요한 측면은 무엇이겠는가? 정신적 힘은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으로 처음에는 정신적 생명력이 있고, 둘째는 육체적 생명력, 셋째는 사회협조적 생명력이 있다. 이 3가지 생명력이 다 정신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키운다는 것은 정신적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사회협조적 생명력을 가지는 것도 사회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색이다. 또 물질적 힘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힘으로 사회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개조한다, 인간을 생산한다는 것은 정신적 생명력과 그리고 이와 결부된 창조적 물질적 힘, 즉 경제적 물질적 힘, 사회협조적 힘, 이 3가지를 키우는 것으로 된다.

학교는 이 3가지를 키워야 한다. 이 3가지는 다른 말로 표현하게 되면 육체적 힘은 육체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는 다음 순서로 얘기하고, 정신적 측면을 먼저 얘기하게 되면 인간의 특성이 자주성이다. 정신이 사람의 욕망에 다다르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어떤 방향으로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자주성을 세우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처신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창조성이 약한 사람, 자주성이 약한 사람이 아니라 자주성이 뚜렷하고 목표를 세워 계속 끈기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자주성이 강한 사람이다.

3. 3가지 교육

이는 사람의 욕망과 관련된 정신력이고, 사람은 또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힘이 창조적 힘을 가져야 한다. 창조적 활동을 하기 위해서 객관세계를 개조하는가 하는 것이 창조성이다. 인간의 중요한 특성이 자주성과 창조성이다. 그 다음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사회적 협조성이 있다. 그러므로 교육에서는 크게 보면 자주성 교육, 창조성 교육, 사회적 협조성 교육 3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사람이 아직도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조건에서 체육교육을 첨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성 교육, 창조성 교육, 사회협조적 교육인데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은 주로 창조성 교육이다. 창조성 교육은 기업가들이 고용할 때 사람이 얼마나 자주성이 강한가는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은 노동력의 가치를 두고 평가한다. 사람을 고용할 때 고용주가 사람의 자주적 성격보다는 우선은 능력을 먼저 평가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중요한 것이 지식교육이 강조된다. 지식만 가지고서는 창조성이 잘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지식을 가져야 창조성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의 입장에서는 지식교육이 창조성 교육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능력에 관한 문제이다. 민족적으로 보게 되면 우리 민족은 이 지식을 지혜의 면에서는 세계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과학적 두뇌가 있다.

4. 자주성 교육

그러면 자주성의 경우는 어떤가? 이는 부족하다. 무엇하나를 목표를 세워놓고서 계속 끌고 나가는 의지는 부족하다. 중국의 격언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있다. 좀 미욱한 사람이 산을 옮기는데 계획을 세워 대를 이어 옮긴다는 말이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끝까지 해나가는 지구력이 부족하다. 이는 우리 민족의 하나의 약점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압도적인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서 독자적으로 앞서나아가는 학자들이나 정치가가 많지 않아 보인다. 세종대왕 때 우리 문자, 즉 훈민정음을 만들었는데 이는 세계사적인 창조사업이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없던 것을 했다.

이런 면에서 서양에서는 지구력이 있다. 유명한 사람 가운데서 독신으로 산 사람이 많다.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지독하게 자주적으로 산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밀(John Stuart Mill)은 어릴 때 너무 재간이 많아서 다른 아이와 어울리면서 오만해진다고 하여 나가서 놀지를 못하게 했다. 아버지 밀(James Mill), 스미스(Adam Smith)와 더불어 걸출한 고전경제학자였다. 그런데 J.S.밀이 사랑하는 애인을 가졌는데 8년동안 계속 만나고 사랑하면서도 육체적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그만 부인이 죽게 되었다. 그러니까 부인 곁에서 조그만 집을 짓고서 일생을 살았다. 이렇게 지독한 사람이 우리는 유교문화를 가져서인지 그렇게 개인의 자주성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철학자들의 경우 이런 사람들이 많다. 독일의 칸트가 독신이고 헤겔은 40세에 결혼했다. 이것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혼했다. 니체, 셀링, 쇼펜하우어, 자연과학자의 경우는 뉴턴, 플라톤, 데모크리투스, 헤라이크리토스 등 모두 독신자이다. 왜 독신으로 살았는가? 너무도 완벽한 것(대상)을 기다리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칸트의 경우 결혼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말해 완전한 이상적인 사랑을 요구하다가 끝내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상적인 완전한 사랑은 있을 수가 없는데, 타협하지 않고 계속 이상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주성이 부족하다.

5. 퇴계(이황), 화담(서경덕), 수운(최제우)

퇴계선생은 전 주자학을 합해서 4대가의 한 사람이다. 일본의 어느 유학자는 퇴계를 공자와 같은 위치에서 보았다. 학문에서는 그 수준을 두고 공자는 '가라사대', 북한식으로 말하면 '교시하시고', 맹자의 경우는 '맹자왈', 그런데 일본인은 퇴계를 '가라사대'의 수준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는 주자학을 이어받아서는 대단한 학자이지만 서화담은 그렇지 않다. 주자학에 자신의 동양철학을 주장하였다. 주자학이지만 독특한 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제일 대표적인 인물은 수운 선생이다. 16세 되던 해에 그 때까지 공부해온 유교의 서적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동학을 발전시켰다.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해나가는 의지력, 전투력, 지구력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꼭 이것을 하여야 한다. 창조성도 자주성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6. 사회협조성 교육

그런데 여기서 학교교육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사회협조성 교육이다. 인간은 고립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협조하고 단결하는 그런 정신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내어야 한다. 이것이 균형이 맞지 않아서 사람과의 외교는 잘 하는데 진실하지 못하고 또 그렇게 과학적 지식은 없다.

맑스가 제1차 국제공산당을 만들 때 바쿠닌을 만났다. 바쿠닌은 무정부주의자로 사람과의 사업은 잘 한다. 권모술수도 잘 쓰고 사람을 끌어모아 조직을 하는 데도 천재적인 재주가 있지만 이론적인 지식은 없다. 사람마다 개별적으로 특색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자주성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키우는 데서도 큰 목표를 세우고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데 무엇을 달성한다는 말인가? 자주성 교육부터 하여야 한다. 이것이 확고하게 되면 창조성은 따라가게 마련이다. 창조성은 재간이 있어서 빨리 깨닫고 해도 자주성이 약하게 되면 좀 나가다가 자만자족해서 발전이 없게 된다. 자주성이 더 중요하다. 7. 중국의 사례

그런데 사회적 협조성이라고 하는 것이 또 더없이 중요하다. 사람이 협조할 줄 모르면 자기권위만 세우고 전진할 줄만 알지 후퇴할 줄은 모른다. 잘못하면 자기존재도 상대방의 존재도 모르게 되는 정신적 파산자가 된다. 기존의 유대를 강조하면서 의전이나 형식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며 일을 하기 전에 자꾸 공작을 하게 된다. 또 상대는 그렇게 해주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고 한번 친한 사람은 버리지 않는다는 신의를 보여주는 의미에서 중국도 그대로 이행한다.

우리는 이런데 신경쓸 것이 없다. 전략적 동반자의 경우보다 북․중동맹관계를 두고 중국은 중국의 편을 드는 것이다. 북은 핵무기를 만들어서 휘둘러 중국을 많이 도와주었다. 중국이 동맹자로 해서 6자회담을 하자는데 도움이 되었다. 티베트문제도 도움을 주었다. 각 국가에 편지를 보내고 지도자들끼리 만나고 그러니까 외세를 막아내는데 이용함으로써 쓸만 하다고 여기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천안함사태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등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것에 대해 양심이 없는 것이다. 동맹자로서 대등하게 대해 준다는 문제와 큰 나라는 큰 역할을 하고 작은 나라는 작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큰 나라가 대국주의로 약소국가에 대한 저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참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결력이 약하고 참을성도 약하고 사회적 협조성이 약하다는 말이다. 단결하지 못한다는 민족이 제일 약소민족이다.

학교에서 왕따당한다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아무리 완력이 있는 나쁜 학생일지라도 조직적으로 단결하여 대하면 꼼짝하지 못한다. 1958년에 상해에 가보니 상해는 왈패가 있어서 그 누구도 장악하지 못했다. 공산당이 들어와서 조직화되니까 꼼짝하지 못했다. 북한의 평양에서도 해방 직후에 패싸움이 진행되는 등 저녁에는 나가질 못했다. 송아지를 받아서 죽이는 왈패가 있었는데 조직화된 당 간부들에 의해서 맥을 못쓰게 되었다. 조직화되어 단결하게 되면 아무리 개별적으로 완력이 있어도 꼼짝하지 못한다.

8. 정치교육

그러면 단결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사회적 협조성의 교육이다. 정의의 원칙에서 단결하여 나쁜 무리에 대해 대항하게 되고 서로 참으면서 화합하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하겠는데 이것을 하지 못하면 나쁜 놈한테서 질서를 유린당해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정치교육을 학생때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조직화하고 단결시키고 설복하고 그런 재능을 어릴 때부터 키워주어야 한다. 옛날 서당에서는 종아리만 때렸지 자꾸 설복해서 자체적으로 질서를 세우고 하는 교육을 하지 않았다. 신학문이 들어와서도 글을 배워주는 것이나 했지 학생들이 자치제로 하여금 자치적으로 일을 처리해가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꼭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는 우리의 보통교육 부문에서는 지금 체육선생이 이런 교육을 맡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위신을 가지고 제대로 조직화할 수 있고 설복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자주성교육, 정신교육 그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데, 사회성 교육은 전문가를 파견하여야 한다. 사범학교에서 정치를 배워주는 그런 전문가를 양성하여야 한다.

지금 정치라고 하는 것이 그런 협조성을 자꾸 선거에서 표를 많이 긁어모으는 것, 돈을 쓰고 이런 길로 나가는데, 그래도 이런데서도 정신교육이 일부는 되지만 그러나 제대로 되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정치를 할 수 있게 되고 자치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3가지 교육(자주성, 창의성, 사회협조성)을 다 빼놓지 말고 해야 한다.

9. 보통교육

그 다음에 보통 교육에서는 국가적인 의무교육제를 실시하는 것이 유리하다. 지금 돈있는 사람이 사립학교를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반대다. 사립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게 되면 세운 사람의 주관이 작용하게 된다. 그것은 좋지 않다. 그 가운데는 훌륭한 사람도 있지만 국가적인 의무교육으로 우리 후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집체교육이 필요한데, 이교육은 또 공명정대하고 옳은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면 어릴 때 특별히 재주있는 학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재교육의 문제이다. 보통 교육을 하여야 한다. 보통 교육은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국민의 정신적 자질을 전반적으로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재간이 있다고 해서 재능만 강조하다 보면 토대는 약한데 바람이 불면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문학, 예술하는 사람도 과학도 배워주고 역사도 배워주어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멀리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면 독창적이지 못한다.

천재라고 하는 것은 정신병자다. 책을 한번 보고선 다 외운다. 불필요한 것은 다 잃어버려야 할텐데 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하게 된다. 글씨를 잘 쓴다고 천재라고 하는데 이를 과연 천재라고 할 수 있나? 명필이 되려면 사상이 있어야 한다. 그저 글씨만 가지고 되는가? 사진만 찍는다고 해서 진정 아름다운 면을 다 찍을 수 있는가? 그래서 아이들 때는 미술(그림), 체육(건강), 음악(노래) 등 모든 교육을 고루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을 모르면 바보가 된다. 아이들 때는 집에서만 놀지 말고 내보내야 한다.

부모는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반대한다고 하면서 나중에는 외국에 유학까지 보내고 있다. 부화방탕하지 않고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자기 아이만 사랑하고 공사를 가리지 않고 맹목적 사랑을 하면 안 된다. 본인 자신은 고생도 했고 일도 열심히 하고 사람에 대한 태도도 정상적이고, 그런데 가까운 사람한테는 공사를 가리지 않는다. 결함이 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러나 후계자는 거짓말만 했지 칭찬할 것이 없다. 거짓말도 자꾸 하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중국인은 5천년 동안 그 많은 인구들과 정치를 해온 사람들인데 왜 속겠는가? 그래서 보통 교육관계에서는 폭을 넓게 하고 쓸 데 없는 것까지 다 배워줄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이 3가지 측면과 관련된 교육은 다 시켜야 한다.

10. 대학교육

그러면 대학에 가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사립대학과 공립대학을 서로 경쟁을 시키는 것이 좋다. 이제 경제로 말하게 되면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는 공동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교육과 과학의 기술을 발전시키고 방법을 개선해서 경쟁을 하는데서는 하나로는 안 된다. 자유롭게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는 사립대학과 공립대학을 배합하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도 가장 큰 대학, 100년 대계를 내다보면서 교육하는 국가가 관리하는국립대학을 하나 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야 대학교육사업과 과학연구사업을 통일시킬 수 있다.

과학연구사업과 대학교육사업은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대학에서 강의만 하고 말라고 하면 대학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 대학교육에서는 강의도 하면서 연구사업을 해서 자꾸 새로운 지식을 가져서 후대를 양성해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게 되면 이제 10년 후에 가서는 대학교과서는 10배로 늘어나게 된다. 이들을 새로운 지식으로 개편해서 전반적으로 인류의 수준이 높아가도 학생들에게는 배워줄 내용은 같은 것으로 된다.

희랍시대 유크리트 기하학은 두꺼운 책으로 힘든 문제는 그때 사람이 푼 것을 지금도 풀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것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이제는 사물을 양적으로서 파악하는데 필요한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고등수학은 고등수학으로 올라가게 하기 위한 계단으로 수학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또 그것이 더 나아가서 미적분이라는 것이 있는데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그래야 현실과 비슷하게 발전해가게 된다. 그래서 지식이 늘어나게 되면 보다 본질적으로 뭔가 하는 것을 교과서를 만들어 배워주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서는 대학의 교육이 역시 과학연구사업에서 최첨단의 지식을 배워주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 지나간 쓸데 없는 것은 가르치는 것도 소용이 없다.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1회 졸업생보다는 2회가 수준이 높고, 3회 졸업생은 더 새로운 것을 아는 방향으로 대학교육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그래서 과학사업은 새것을 탐구해가는 사업이니까 대학교육과 과학연구사업을 결합시켜야 한다.

11. 아나톨리 프랑스

그런데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교육과 과학의 큰 연구사업을 하려면 역시 협력이 필요한데 작은 대학으로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작은 대학을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각자 노력하기 나름이다. 뇌의 크기로 말하면 프랑스의 노동자의 두뇌가 2Kg으로 제일 크다. 아나톨리 프랑스는 1Kg정도로 두뇌가 작다. 프랑스의 천재인 작가로서 유명하다. 우리가 자기 뇌를 다 써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생리적으로 타고난 것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때 머리가 나쁘다고 하지 말고 좋다고 추어주며 키워야 한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나빠지고 만다.

12. 과학연구사업

대학교육 다음에 중요한 것이 과학연구사업이다. 과학연구사업도 집체적으로 하는 것이 있고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 있는데 배합하여야 한다. 이것도 대학의 교육발전과 원리는 같다. 그러나 이것도 마음대로 내버려두게 되면 쓸데없는 것까지도 연구하게 된다. 연구사업에 아무런 이념도 없는 것을 가지고 예를 들어 정상적인 온도에서 핵융합을 한다고 한다. 1억도에 가까운 열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천문학적 지식이 없다.

또 금강석을 인공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금강석은 탄소로 만드는 것인데 같은 탄소인데 압축해서 만드는 것인데 전 지구의 힘을 가지고서 만드는 것을 인간이 한다고 한다. 필요도 없는 것이고, 뭘 하겠다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통제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생활적인 가치가 없는 것까지도 연구하게 된다.

13. 진리란?

진리로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두 가지다. 첫째로 객관적인 현실에 맞아야 하고, 둘째로는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객관적 현실에 맞는 것이 진리가 아닌가? 그러나 한강의 모래알이 몇 개인가를 아는 것이 인간의 생활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인간생활에 가치가 없는 것은 진리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인간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발전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만큼 보편성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더 발전해서 지구를 다 지배하고 태양계를 지배하고 은하계를 지배하게 되면 우리의 발전에 유익한 것은 그만큼 더 보편성을 가지게 된다. 우리에게 은하계까지도 유리한 것으로 되면 그만큼 보편성이 넓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실용적인 것만이 아니고 그 자체가 가장 보편적 존재로 따라간다는 의미에서 그만큼 보편성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두가지 조건이다.

그래서 과학연구사업은 내버려두게 되면 대학에서 무슨 기(氣) 연구를 통해 생명을 연장한다고 하는데 이런 환상적인 연구가 어디 있는가? 실천과 결부하여 실천적으로 효과가 없는 것은 통제를 해야 한다. 소위 ‘감’에 의한 것으로, 오감으로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의 5가지 감각이외 또 감각이 있다고 하여 6감이다. 이것은 딴 것이 아니다. 이런 본능적인 감각에서 종합되거나 해서 육감인데 감각을 자꾸 훈련시키면 발전하게 된다. 눈 못보는 사람은 자꾸 손비비면서 하다 보니까 손을 더듬는 촉각으로 알게 된다. 그러다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몇 개 힌트를 가지고서 연결시키는 것이 대단히 빠르다. 그런데서 맥을 보면서 다 아니더라도 상당히 알아 맞춘다. 6감을 발전시킬 수 있으나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을 감추라고 해놓고 돌아서서 찾으라고 하면 찾질 못한다. 눈을 보고서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방에 가두어놓고 훈련을 거듭하였는데, 이런 것 가지고서 무슨 큰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는 춘추시대에 손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아이들은 많은데 가난하기 때문에 제일 작고 못생긴 아이를 노예로 팔았다. 얼마나 못생겼느냐 하면 한번 보면 일생에 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아이는 자신에 대해 늘 신경을 썼다. 사람을 보기만 하면 눈치가 빨라졌다. 상대의 마음을 얼굴을 보고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신통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노예주가 같은 노예가운데 제일 곱게 생긴 여자를 결혼시켰다. 그래서 여자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공부를 하다보니 6감이 발전하여 다 알아맞히지만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해결을 하지 못한다.

역시 정상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이런 것들을 이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는 일종의 최면술을 자기에게 건 것과 같다. 자신에게 신념이 생겨서 자꾸 행동하고 그리하여 내가 신념이 있다고 자꾸 생각하게 되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생기게 된다. 정신적으로 하는 것은 역시 교육을 하는 것이고 과학연구사업을 하는 것이다.

14. 문학․예술 교육

그 다음에는 문학예술교육이다. 문학․예술은 이론과는 다른 것으로, 이론은 지식으로서 논리로서, 논리란 지식의 연계체제이다. 논리란 지식의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체계의 질서에 따라서 정리한 것이 논리이다. 그런 이론으로서 사람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은 형상으로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발전된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해야 된다며 이를 가르쳐주는 것이 이론이라면, 아름다운 생활이 무엇인가? 보다 더 아름다운 생활을 형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다.

가장 아름답다는 것은 가장 발전된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꽃이 아름다운가? 사람이 아름다운가? 꽃이 아름답다고 하면 꽃하고 같이 살 것인가? 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눈물을 흘릴 줄도 모르고, 선인이나 악인에게 모두 똑 같다. 사람도 발전된 사회에서 더 아름답다. 그러므로 겉으로 못생겼다고 해서 걱정할 것이 없다. 발전된 존재로 자신을 자꾸 발전시키면 진짜 아름다운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가장 발전된 것이 가장 아름답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하도록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따라서 이론으로 서술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형상화해서 문학이나 예술작품으로 만들게 되면 몇배나 더 영향력을 발휘한다. 괴테의 말대로 추상적이다, 잿빛이다 하는 것을 형상적으로 내보내면 뚜렷해진다. 영향력이 대단히 커진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과학적인 진리보다도 문학예술에 관한 것을 보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학예술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 약점이 어디 있는가 하면 이론과 이 형상화하는 것을 배합해야 하겠는데 이론이 약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생관에 관한 철학적 이론이 약하기 때문에 형상에 대한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것을 발견은 하는데 말이다. 먼저 고리끼와 둘째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예를 들어 보자.

11.고리끼

먼저 고리끼의 작품으로, 유랑하면서 돌아다니는 민족의 집시에 관한 얘기이다. 집시의 촌락에서 로이꼬라는 청년이 대단히 용감하고 그저 무엇이든지 도둑질도 잘하고 기타도 잘타고 온 동네사람으로부터 영웅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제대군인 다니엘에게 라자란 딸이 있었는데 자존심이 강했다. 노래도 잘하고 남자를 남자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노래하는 장소에 로이꼬가 나타나니 모두 영웅이 왔다고 야단인데 라자는 본체만체했다. 로이꼬가 노래를 부르며 라자의 표정을 보고 있는데 오히려 무슨 노래가 모기소리같으냐고 대꾸했다. 로이꼬는 모든 여성을 자기 마음대로 끌어당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여자만 반대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매력을 느꼈다. 처녀의 아버지에게 아내로 줄 것을 청혼했다. 좋다며 데리고 갈 수 있으면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끌어다닐려고 하는데 어느 사이에 라자가 말머리한 채찍으로서 다리를 걸어 잡아다녔다. 온 동네사람 앞에서 여자로 망신을 당하게 된 꼴이 되자 칼부림할 수도 없고 자리를 떠나자 집시의 추장이 어떻게 나가는지 따라가 보라고 하자 밀밭에 숨어 가만히 보니까 로이꼬가 돌맹이 위에 앉아 있었다. 얼마 안 있어서 라자가 로이꼬에 접근해가자 모욕을 준 라자인줄을 알고 라자의 이마에 피스톨을 갖다 대었다. 라자가 칼버려라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화해하기 위해서 왔다며 대담하게 나왔다.

그러자 로이꼬가 너 말을 들어보자고 했다. 라자는 나는 너만을 남자로 생각한다. 너도 나만을 여인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없이는 못사니 화해하자고 하니 로이꼬 역시 반대가 없다고 대답하니 라자는 그러면 내일 저녁에 나한테 와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내 발에 키스를 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이틑날 라자가 먼저 와서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이꼬가 왔는데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고민을 해서 모습이 달랐다. 조건이 서로가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를 완전히 버리게 하고 자기만 사랑하는 존재로 되라는 조건이었다.

지금까지는 로이꼬는 전체 집단의 사랑을 받은 사람인데, 그래서 여기서 모순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밤새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라자는 누워서 "빨리 와서 자기 발에 키스를 해라" 하고 로이꼬는 "기다려라,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영웅인 로이꼬가 라자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키스를 하는 것같은데 장도칼을 찔렀다. 그러자 라자는 "나는 너가 그렇게 할 줄 알았다"며 장도칼을 빼던지며 머리채를 낚은 채로 죽었다. 라자의 아버지가 장도칼로 로이꼬의 등을 찔러 둘 다 죽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에 아무런 설명이 없이 끝났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왜 이렇게 가장 우수한 남자와 우수한 여자가 이렇게 밖에는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었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이 없다. 이 해답을 우리 모두 생각해보자.

12.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천재이다. 못하는 것이 없었다. 모나리자는 플로렌스의 부호(귀족)의 부인인데 자기 남편의 요구에 따라서 모델로 해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다빈치가 맡았다. 4년 걸렸는데도 완성을 못했다. 못그린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미소가 무엇인가를 궁금해 했기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친해지면서 "내가 처음에 자연에 대해서 연구할 때는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연을 연구하다보니 자연이 너무도 넓어 겁이나서 공포심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에는 호기심과 공포심이 싸우다가 요즈음에 와서는 호기심이 이긴 것같다"고 하자 모나리자가 "그렇게 위대한 진리를 호기심만 가지고서 발견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문학가들이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어쨌던 호기심이외에 무엇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위대한 동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다음의 또 하나의 의문은 두사람간의 관계가 남녀간의 성적인 관계인가 아니면 무슨 딴 것인가? 알 수가 없었다. 그림을 끝내지를 못하고 이 3가지 답변을 얻기 전에는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3년동안 방랑생활을 했다. ① 미소(微笑)의 의미 ② 애정의 문제 ③ 진리의 발견을 위한 위대한 동기 이 3가지를 끝내 알 수 없어서 다시 찾아나서 직접 모나지라에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모나리자는 세상에 없었다. 그래서 초상화를 그리고서 종신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이 3가지 의문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답변을 주어야 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철학적인 기초를 가지고서 생각하지 못했다. 문학작품에 그런 것이 많다. 문학에 4대 문호가 ① 희랍의 호메로스(Homer) ② 르네상스시대의 단테 ③ 세익스피러 ④ 괴테 각각 특색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색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철학적으로 해명한 것이 없다.

인간중심철학은 철학적으로 해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의견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이 철학적인 원리(이론)와 결합되게 되면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초가 약하게 되면 형상화하는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멀리 나가지 못한다. 13. 인간중심철학의 해석

그럼 현재의 입장에서 우리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기로 한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신념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신념이 강한 사람은 그림그리기가 힘들다. 억측할 수 없는 그런 깊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호기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류의 운명에 관한 것,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고, 개인적인 호기심을 초월한 큰 가치있는 것, 즉 인류의 운명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같은 식으로 문학작품을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녀간의 관계는 애정과 우정 두가지가 다 있을 수 있다. 다빈치가 잘못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원래 남녀간의 사랑과 인간과의 사랑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게 신경쓸 것이 없다. 다빈치도 당시의 사람으로서는 종합적인 천재이지만 그런데 대한 사상적 깊이에 있어서는 아직도 초보적이다. 또 후대에서 만들어낸 말인지, 직접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 다빈치는 당시 법왕(교황)의 아버지가 체자르인데 권모술수에 능한 그에 아부해서 궁정이나 변소나 어느 것이든 설계해주겠다고 했다. 10명의 도둑에게 아첨하는 친구와 달리 한 사람의 도둑에게 아첨한다고 했는데 아무튼 사상적 수준이 발전하지는 못한 것이다.

또 고리끼의 작품에서 상대방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사랑은 예속관계가 아님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아마도 자존심이 강한 라자인 것을 두고 복종했더라면 그 여자는 또 싫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죽음에 직면하여 "네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한 것이다. 절대적인 사랑, 완전히 자기만에 복종하는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부부간에서도, 연애하는 데서도 상대방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생명이 서로 결합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14. 결론: 괴테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말가리테하고 파우스트의 사랑이 파탄된 것도 하나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만 개인적인 사랑이 성립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을 존중히 여겨서 공동의 목적을 세우고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하는 방향에서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역시 여기서도 일정하게 독점하자는 이기주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라자의 강한 독점욕, 로이꼬의 모든 희생은 이것은 사랑의 기본원리에 모순되고 인간본성에도 모순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나가야 되겠는가? 오늘날 자본주의자들이 공동의 목적을 개인의 존재보다 더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 협력하는 방향으로 사람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다른 해석이 있으면 얘기해보자.

Share |


의견 쓰기
 
  
   
서비스 이용안내
해당 서비스는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회원이 아니시라면 지금 바로 회원등록을 하세요.